책 그리고 흔적

열세 번째 후회,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오츠 슈이치 저

p5kk1492 2024. 9. 12. 06:27
728x90
반응형

삶과 죽음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더라면

나는 생이란 타인의 삶과의 연결 고리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인간 고독하지만 홀로 살 수 없다. 외롭지만 늘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원한다. 그렇게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는다.

 

삶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내고 또 확고히 다져두면,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더욱이 건강할 때 확고한 철학을 갖고 살아간다면,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행복한 마무리도 지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없다. 무거운 주제를 꺼낼 만한 상황도 거의 없고, 특히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꺼낼 수 조차 없다. 심지어 누군가의 죽음을 너무나 타자화된 상황으로 대화가 오고갈 때, 나는 누군가와 삶과 죽음을 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였을 때, 그 사람들 그 친구들은 그렇게 타자화된 대상으로 내 죽음을 논하고 있다는 상상을 헀다. 그 뒤로는 그냥 스스로 사유하는 방법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죽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글이나 책을 유심히 봤다. 그렇게 나는 저자들과 글과 말을 통해 대화하는 방법을 찾았다. 물론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죽음에 대해 말하는 것 조차 금기이고, 가볍게 말하고 진지할 경우 짧게 말하고 끝냈다. 어쩌면 정치나 종교라는 주제보다 더 금기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데, 마치 내 얘기는 아니란 태도로 대한다. 누가 죽었대, 왜 아이고 그렇구나, 그래 차라리 잘됐지 고생했잖아 등의 말을 들어왔다. 내가 죽는다고 생각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처럼 실제로 죽기로 마음먹고 행동했다가 살아돌아왔을 때 어떤 기분일지 알까. 그때 죽었으면 차라리 이 더러운 꼴은 안보고 살텐데 혹은 그떄 살아남아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보는 구나 삶이 참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등을 의식의 흐름으로 지나간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