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박경리, 2부 어머니 <외할머니>

p5kk1492 2024. 10. 9.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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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외할머니

 

몸매는 깡마르고 자그마했다

약간의 매부리코

그 코끝에 눈물방울이 달라곤 했다

눈에는 이상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외할머니의 모습이다

 

말씨는 어눌했다

돈을 셈할 줄 몰랐고

장에 가서 물건 흥정도 못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곧잘 다투었다

주로 어머니의 원망과 한탄이었다

대거리할 말을 찾지 못한 할머니는

입술만 떨었다

 

어머니의 원망과 한탄은 뿌리가 깊었다

혼인 때 신랑 집에서 보내온 예물을

외삼촌 장가드는 데 써 버렸다는 것에서부터

아버지가 새장가 들 때

갈라서는 조건으로 사 준 집을

외삼촌 노름빚으로 날렸다는

대강 그런 내용의 원망이었다

 

어머니가 늑막염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간병으로 왔던 외할머니는

죽을 쑤고 빨래를 하기도 했으나

만사가 서툴고 얼씨년스러웠다

어린 나는

병원의 복도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았다

 

딸들 집을 전전하던 외할머니

말년에는 아들네 옹색한 셋방에서

진종일 긴 담뱃대만 물고 있었다

인생을 노름판에서 탕진한 아들

그 외아들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딸들 앞에서 울던 외할머니

해방 직후

그분 역시 팔십 장수 누리다가 떠났다

 

감상

 

그시절 외할머니와 나의 외할머니는 다들 어머니에게는 서운함을 새기고 떠나셨다. 그분들도 자신들이 가진 것을 외삼촌에게 주다가 떠나셨고, 나는 그런 사실과는 조금은 떨어진 외손자이기에 그냥 외할머니가 좋았다. 함께 지냈던 외할머니가 나는 어머니같기도 했고 정이 많던 그 때의 추억이 여전히 내 머리에 사진처럼 남아있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보다는 좀더 길제 사시다 가셨고, 내가 여전히 캐나다에 있는 줄 아셨었다. 그렇게 나는 두 외조부모님에게 마음의 깊은 죄를 지은 감정을 마음 한 켠에 두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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