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자기합리화를 했던 나날들

p5kk1492 2024. 6. 13.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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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 페스팅거의 어록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면서, 문득 내가 자기합리화 했던 경험을 돌이켜봤다. 분명 나도 내가 믿었던 삶이 부정당하거나 그에 맞지 않은 상황에서 인지부조화를 느꼈었다. 믿음과 현실사이의 간극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겁한 행동은 결국 자기합리화였다. 돌이켜 보니 자기합리화의 화신은 나 자신이었다.

 

인지부조화와 자기합리화

내가 믿어왔던 것이 실제적인 진리와 괴리감을 느꼈을때

내 믿음이 틀렸음을 인정했는가

내 행동으로 잘못된 믿음을 지켰는가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밟았는가

그런 경험이 떠오르는가

 

시작은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작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살면 행복하다 믿었다. 나는 어릴때 역사를 좋아해서, 좋아하는 역사를 통해 꿈을 이루면 행복하겠다는 믿음을 가졌다. 그래서 어느정도 타협선이 역사선생님이었다. 왠지 역사학자는 난이도가 높아보였고, 이는 어느정도 현실감각이 있다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교수가 되는 꿈보다는 교사쪽이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에 그 길을 택했고 사범대에 진학했다. 허나 꿈이 박살나는 세계로 들어간 셈이다.

 

대학생활은 내가 역사를 좋아하면서 그 삶을 따라가면 꿈을 이룬다는 믿음이 틀렸음을 배웠다. 임용고시는 해가 갈수록 치열해졌고, 그 길은 내 능력으로는 갈 수 없는 방향이라 여겨졌다. 정교수가 아니더라도 박사학위를 받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역사를 정말 좋아하는 선생님의 삶도 들여다봤다. 나의 믿음, 역사를 좋아하면, 좋아하는게 내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하면 행복할 것이란 믿음은 틀렸다고 느꼈다. 여기서 인지부조화가 시작되었다.

 

사실 인정했던게, 내가 힘들거 같아서 임용도 보기전에 포기했고, 학자의 삶을 들여다본순간 대학원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도전도 하기전에 꿈을 접은 거나 마찬가지다. 시작도 하기전에 포기한 내 자신의 행동, 그동안 가졌던 믿음과의 간극이 일종의 인지부조화 과정이었고, 그 결과는 결국 자기합리화였다. 그냥 역사는 좋아하는 마음만 간직하고 살겠다는 오답, 결국 지금은 그 좋아하던 역사도 버렸지만.

 

한번의 자기합리화는 여러차례 벌어진 다음 상황에서도 습관처럼 하게되었다. 적성이 안맞느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결국 그렇게 취업준비로 인한 정신적인 붕괴현상을 겪었다. 대학은 중퇴하고 서울생활을 접고 잠시 제주에 유배갔다가 호주로 도피한다.

 

취업실패 대학중퇴 서울생활 포기
호주로 도망치면서 이민준비
내가 제대로 준비못해 실패한 삶
한국사회가 문제로 탓을 돌리면서
호주의 삶 그리고 캐나다 영주권준비
영주권 준비할 여유가 되니
어려워지는 호주보다 캐나다행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다는 꿈을 꾸었을까, 나는 호주 혹은 캐나다에서 삶을 다시 시작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새로운 믿음을 만들어냈다. 꿈이나 행복은 이제 뒤로 미뤄두었고, 도피한 만큼 딱 그 상황에 알맞는 만족만 얻고자 타협한 믿음이었다. 낙원까지는 아니었지만, 도망친 주제에 나름 만족스러운 해외생활을 보냈었다. 이제 영주권 준비과정에서 진짜 믿음에 대한 현실을 시험받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일단 영주권을 얻기 위해 호주에서 캐나다로 옮겼다. 오직 영주권을 얻기위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삶으로 캐나다와 학생비자를 준비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했다. 낯선 땅에서 배운 언어로 더듬더듬 말하던 재미와 어렵게 모은 돈은 호주에서 나왔다. 캐나다에서는 그돈을 소모했고, 영어 대신 한인놀이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영주권을 준비하는데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어서 큰 상관은 없었다. 다만 캐나다에서의 삶도 좋지 않게 끝났다. 서울에서의 실패와 같은 이유로 말이다. 해외정착의 실패는 결국 영주권자가 되어도 행복하지 않았을거란 여우의 신포도 결론으로 자기합리화했다.

 

캐나다에서의 실패 무너진정신
요양사생활의 부적응
주변동료에 태도에 대한 불만으로

 

캐나다에서 제주로 돌아온 뒤에는 딱히 인지부조화를 느끼지 않았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붕괴된 정신으로 요양보호사생활을 하다보니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내 문제 였지만, 주변탓을 하고 있게 되었다. 내가 일할준비가 안된상태로 살아가는데, 주변사람들이 피해를 보면 당연히 부정적 시선과 피드백이 돌아온다. 호주에서의 요양사 생활을 생각하며, 한국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 간극을 결국 주변탓 한국사회탓 그렇게 시간을 허비하면서 자기합리화의 늪에 빠져있었다.

 

내 잘못을 주변탓으로 돌리면서
나 자신은 지키는 자기합리화

어디서부터 인지부조화가 온걸까, 결국 내가 굳게 믿어왔던 것들이 틀렸음을 느꼈을때, 틀렸음을 인정하지 않고 선택하는 행동들이 더 큰 문제를 불러왔다. 나도 모르게 믿음이란것을 이제 아예 갖지 않게 되고, 그 자체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인지부조화로 인한 내 자기합리화,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겪었다.

 

내가 과거의 이야기만 하고, 기사나 책, 영화 속에서 글감을 가져와서 말과 글을 남기는 것도, 일종의 방어기제라 볼 수 있다. 또다시 내 현재의 상황이나 믿음을 논하다가 무너지는게 두렵다. 결론을 좋게 마무리하고 싶지만, 아직은 좋은 결과를 가져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