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일요일에 두번째 한국어 교육 봉사를 진행했다. 토요일에 약속이 있어서 오전에 미사를 챙기고 방문했더니 시간이 약간은 촉박했다. 그래도 저번에 다섯명정도 왔으니 아마 적겠구나 싶어서 대충 유인물을 복사하고 3층에 올라갔다. 그런데 가보니 저번에 왔던 인도커플 2명에 시크교 가족 4식구, 그리고 찍먹하러온 파키스탄 커플에다가 중국인 친구까지 있었다.
패닉이 왔고, 일단 복사를 다시하러 내려가고 하다가 복사본을 잘못하고 말았다. 일단 수업을 겨우겨우 마치긴 했지만 정신없이 끝났다. 일단 힌두계열의 친구들은 한국어가 안되서 영어로 수업을 했지만, 중국인 친구는 중국어 외에는 아예 소통이 안됐다. 그래서 일단 힌두친구들 중심으로 수업을 하고, 구글번역기로 중국친구에게 한국어를 교육하는 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힌두친구들이랑은 화기애애 하긴 했지만, 중국인 친구들을 교육하는 방법에 대해 어려움을 느꼈다. 내가 중국어를 아예 모르니 구글번역기 말곤 당장 방법이 없다. 게다가 내가 한국어 입문단계를 맡은 상황...이면서 지금 한국어 교육 봉사자가 나밖에 없는 상태다. 일단은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는 수밖에. 그리고 이 상황이 무작위라고 한다. 다음주에는 한명도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국어 교육 봉사 뒤에 베디야라는 레바논 출신 친구의 중졸 검정고시를 돕는 봉사가 기다렸다. 과목은 사회와 한국사 묶음인데, 난 오늘 인사정도 하는구나 싶어서 안면이나 트자 했다. 그런데 이친구도 나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일단 인사는 대충하고 베디야가 공부한 챕터를 두고 대략적으로 어떻게 수업을 해야할지 이야기하고 복습을 했다. 나름의 오리엔테이션? 인트로덕션 느낌으로 마무리했다.
폭풍처럼 교육봉사가 끝났고, 마치 중퇴한 사범대 출신 시절의 마인드가 살아나는 기분도 들고, 호주에서 네팔친구들이랑 같이 대화를 나누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때는 내가 영어를 배우기 위해 대화했다면, 이젠 반대로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영어를 쓰고 있다. 과외경력에 외국인 검정고시 교육이 추가되기도 하고말이다. 가벼운 마음의 봉사가 조금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덧씌워진다. 나의 의지박약이 여기서는 발휘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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