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면 충분하다
인생의 의미가 찰나임을,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느끼는 그 순간이 삶의 소중함을 인지하게 만들어 준다. 명언이나 명문을 남긴 인물들을 보면, 순간의 중요함을 느끼고 되려 절제하고 때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그 기저에는 삶의 덧없음, 욕망의 허무함 등과 같은 경험이 서려있는 것도 흥미롭다. 최고의 위치에서, 누릴 수 있을 것을 다 누릴 수 있는 인물들이 순간의 중요함을 논하고, 불후의 명저와 어록을 남기는 것을 보면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은 양면적이다.
우리가 역사를 언어가 발달하면서, 문자가 발달하고 기록문화가 고도화 되면서 시간을 적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과학의 발전은 우리 우주의 역사 대비 인간의 문명, 그리고 개개인의 삶의 시간이 얼마나 찰나인지 인지하게 해주고 있다. 그럴 수록 인간은 순간을 더 소중하게 인지한다. 사실 어차피 나하나 막산다고 세상이 달라져라고 시간 빌게이츠로 빙의할 수도 있다. 허나 우리 내면에는 나 자신의 삶에 대해 너무나 소중하다 여긴다. 물론 나를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선택이지만 말이다.
고등종교 혹은 철학자들자들의 발자취, 그들이 우주의 역사가 인간사보다 훨씬 길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인지 했을지 모른다. 시간, 영원성 인간의 유한함 등이 아마 막연함과 확신 그 중간 즈음에서 덧없음을 느끼게 해주지 않았을까. 허무함과 순간의 소중함이 뒤엉킨 내 삶에서 우리는 더욱더 절실하게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 그렇게 얻은 결론은 자기 나름의 가치판단된 행위로 이어진다.
나는 삶의 의미에서 아마 패배주의 속에서 피어난 취미주의, 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린 시절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취미와 커리어 인간관계 등 다양한 곳에서 펼쳐지길 바랐던 욕심많던 인간이었다. 모든 일을 해도 중간이상은 하는 듯 해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성취가 날 법한 행위는 다 하고 다녔었다. 공부도, 책읽기도, 다이어트건 사람들간의 교우관계건 간에 이것저것 훈장질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이 밑바닥을 깊숙히 박혀봐야 정신을 차린다. 그동안에 차곡차곡 레일위를 달리던 인생이 낙마한 뒤 패배주의와 허무감에 사로잡혀 꽤 긴 시간을 보냈다. 그땐 삶에 대한 아무 의미부여도 의지도 없었다. 지금은 그 시간이 취미주의자로 만들어주는 잠복기간 혹은 암흑기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회복의 시간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지금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 빼고, 만나야할 사람정도만 교류하고, 나머지는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들이다. 운동부족의 소아비만인 녀석이 운동배우는 취미, 책을 좋아하는데 글을 쓸줄 모르는 소년의 글쓰기활동, 라디오를 만들어 보고 싶던 청년의 유튜트 라디오 업로드 등 여러가지 자아들과 소통중이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주의고 매 순간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활동들이다.
물론 연애세포가 박살난 독거인의 나는 홀로 탈출기 활동도 하고싶긴 하지만, 덧없어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패배주의의 엄습을 막는 것도 순간에 대한 예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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