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노인과 바다를 책으로 읽었을 때, 이게 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노인이 소년과 이야기를 주고 받고, 바다에서 치열하게 사는 구나 하는 서사만 개괄적으로 파악하고 책을 덮었었다. 소설맹 다운 소감을, 누구에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왜냐면 어니스트 해밍웨이 작품이고, 엄청난 찬사를 받은 불후의 명작 아닌가. 그냥 내가 이해력과 독해력이 떨어지는 걸 숨기기 급급한 후기였다.
노인과 바다가 생각보다 긴 소설이 아니기에, 오디오북도 대략 반지의 제왕 디렉터스 컷 길이정도만 견디면 된다. 또 노인과 소년의 말을 성우의 목소리로 들으니 이제 몰입이 되더라. 소년과 노인의 대화를 보면, 왠지 나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소년은 적극적으로 노인을 따르고, 노인의 야구이야기나 바다사람의 삶에 대해 듣고 참여한다. 나는 그저 리스너이긴 했지만 어쨌든 소년의 나이와 노인의 나이대가 왠지 어울리는게 느껴진다. 원래 노인들은 젊은이나 중년보다 손자뻘이랑 교감하긴 한다. 이건 약간 뇌피셜이라 넘어가길.
사실 내가 소설에 대해 잘 몰랐구나 싶었던게, 소년과의 대화 이후가 이제 노인이 바다에서의 서사가 장대하게 그려진다. 노인의 삶 그 자체가 바다구나. 그냥 고기를 잡는게 아니고, 인생을 걸었던 그의 삶을 소년이 본다. 중간에도 나오지만, 노인은 소년이 자기 자식이라면 바다사람으로 키웠을 것이란 말을 한다. 소년에 대한 애착과 동시에 자신이 바다사람으로 살아간 삶에 대한 자부심이다.
해밍웨이는 노인조차도 하드보일드한 사나이로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것인지, 노인도 수컷이란 정서를 우리의 뇌리에게 박아넣는다. 그의 짧은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매력적인 문단과 그 문단들이 모여서 메워지는 서사가 오디오북으로 내 귀에 춤을 춘다. 오디오북 덕분에 내가 나름 노인과 바다를 즐겼다고 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재밌게 귀로 읽은 작품, 어니스트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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