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일주일에 한번 클리퍼, 소위 바리깡을 이용해서 스스로 머리를 밀고 있다. 미용이라고 하기엔 택도 없다. 그렇다고 이발이라고 하기엔, 그것도 수준에 맞지 않다. 그저 전동 클리퍼를 이용해서 12미리와 9미리 클리퍼를 장착해서 밀어버린다. 윗머리 12, 옆머리 9로 밀어낸다. 주마다 밀어버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머리 형태가 너무 변하면 다시 미용실을 재방문이 필요할 것 같아서.
밀면서도 9미리 6미리 까지도 한번 시원하게 도전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사실 호주에서는 돈을 아끼려고, 10불짜리 미용실이나 전기바리깡으로 6미리 반삭을 하고 다니곤 했다. 그땐 돈도 돈이고, 딱히 머리 스타일이나 와꾸에 대해서 주변을 신겨을 쓸 필요가 없었다. 같이 사는 한인 워홀러 친구들이야 내 컨셉에 재밌어 하지, 오지들이나 외국애들은 당연히 신경쓰지 않았다. 난 6미리 반삭에 수염도 밀지 않았기에, 머그샷 수준의 살벌한 와꾸로 거리를 다녔다. 아 물론, 밤엔 무서워서 낮에만 다녔지.
다시 호주에서 처럼 머리를 밀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전동 클리퍼를 쿠팡에서 구매했다. 미용실가는 돈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아까웠다면 애초에 전동클리퍼를 샀곘지, 오히려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이 더 컸을 거다. 아무리 짧게 짜르러 가는 미용이지만, 그래도 사회에서 원하는 규격의 깔끔함을 지켜야 동료든, 이성이든 사람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호주에서 처음만나게 된 한인 누나가 건낸 한마디가, "그렇게 하고 다니면 뭐라고 안하냐"는 말이었다. 그 누나는 뭐 유쾌하게 질문했지만, 이게 뿌리깊은 한국인의 시선이다. 호주에서도 한인들을 만날때 신경써야할 것들이 많았고, 지금은 한국에 살고 있으니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신경써야할 게 많다. 와꾸가 박살났어도, 테러리스트로 보여서는 안되지.
근데 스스로 삔또가 나간 셈이다. 내가 이제 40언저리고, 2년이 지나면 완연하게 40대 남성이 된다. 어떤 관계에 대해 미련을 갖는게 무의미해지기 시작하다. 나이가 깡패인게 여자만 적용되는게 아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나이든 남성도 사실상 한국사회에서는 달리트, Outcast 라고 본다. 물론 내 생각이고, 일반화 할 생각은 없다. 내 스스로 나에게 내리는 평가라는 점, 하지만 누군가는 불편하거나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능력없는 수컷은 관계맺음에서 타자화 된다는 사실을
20대 시절, 고졸이지만 대학물을 먹었던 때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인서울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위치의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던것 같다. 소위 지적 허세 덕분에 뭔가 많이 아는 녀석으로 통했던 시절에 좋은 만남도 많았다. 좋은 선배, 형님, 동생, 누나, 인연들 그리고 멋진 선생님들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머리의 사진첩으로 남겨둘 뿐이다.
이제 다가오는 토요일에도 12미리 9미리 클리퍼를 꽂고 머리를 밀어내겠지. 내가 밀어내는게 박살난 와꾸에서 자라나는 머리칼이긴 하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쌓였던 미련도 같이 밀고 있는 셈이다. 머리가 뭐 별거냐고? 씨발 한국에선 보이는게 다니까. 진짜 맘같아선 6미리 클리퍼로 싹 밀고 수염을 딱 한달만 안 밀고 싶다. 용모단정으로 퇴사해야하니?
'일상 끄적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재론 - 내 열정의 불씨는 마치 성냥과 같은 (0) | 2025.03.03 |
---|---|
아재론 - 내가 나은 삶을 살고 있었다면 The Life I Couldn’t Live (0) | 2025.03.01 |
아재론 - 피곤해도 삶을 버티게 되는 요즈음 feat.일시적, 병든닭적인 (0) | 2025.02.23 |
러-우 "분쟁"이 되버린 상황, 이제 우크라이나는 우야노 (0) | 2025.02.23 |
아재론 죽어가는 나와 당신에게 (1) | 2025.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