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the Draft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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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길었던 해외생활을 추억하며

Bible Verse for All 2025-02-12

p5kk1492 2025. 2. 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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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 Verse 에서 철학적 메시지만을 뽑아 올리는 작업은 쉽지 않다. Bible 에 철학적 서사가 담겨있지만, 그 부분을 내 스스로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항상 챗지피티의 신세를 지고 있다. AI의 노예.

 

누가복음 6장 28절(NIV):

“bless those who curse you, pray for those who mistreat you.”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학대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구절을 보편적인 철학적 주제로 확장할 수 있는 키워드 세 가지를 제시하자면:

1. 윤리적 이타주의 (Ethical Altruism) –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쳐도 선의로 대해야 하는 윤리적 책임과 인간애에 대한 철학적 논의.

 

이타주의는 이기적인 정서가 최고 아웃풋으로 나타날 때 등장하기도 한다. 나의 이기심이 타자를 돕는데 발현될 때, 이기적 유전자의 논리와 결을 같이 할 때다. 공동체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 결국 이타적 행동이 나의 이기심이 작동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2. 비폭력과 용서 (Nonviolence & Forgiveness) – 원한과 보복이 아닌 용서와 사랑을 통한 갈등 해결과 도덕적 승리에 대한 사상.

 

상대방의 폭력을 비폭력으로 대하고, 용서를 한다는 것은 위대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누군가의 폭력성에 대해 본능적으로 되받아친다. 보통은 폭력에 대해 폭력으로 저항한다. 난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폭력에 대해 비폭력적으로, 용서의 측면으로 다가갔을 때 우리의 삶에 전환이 이루어진다. 나 또한 실현하지 못한 행동이지만, 때론 성인의 발자취라도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폭력주의와 용서하는 삶이 떠오르곤 한다.

 

3. 도덕적 역설 (Moral Paradox) –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 직관적으로 어려운 윤리적 딜레마이자 인간 본성과 도덕적 이상 간의 갈등.

 

이타심과 이기심, 폭력과 비폭력 등은 인간의 본성과 역행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도덕적 역설을 연상케 하는데, 특히 보통의 상황이 아니라 악을 상대할 때 딜레마에 빠진다. 절대적으로 악행을 보거나 당했을 때, 우리는 용서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고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화와 반독재의 길을 걸으면서, 실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과 사형을 언도받은 경험이 있다. 수많은 정치적 역경을 딛고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을 때, 그는 보복의 정치를 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권위를 내려놓고,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자율에 맡겼다. 그렇게 무시하고 조롱하는 집단에 대해 관용으로 대했다. 이에 대한 결과는 좋지만은 않았다.

 

넬슨 만델라, 마틴루터킹, 마하트마 간디 등 수많은 이들이 사회적인 폭력 속에서 역설적인 행동으로 세상을 바꿨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했던 일들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위대한 발걸음이다. 그 발걸음 옆에 작은 발모양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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