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융 <자신의 상처를 남용하는 사람들>
"가장 위험한 실수는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들에게 덧씌우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분쟁의 근원이다." - 칼 융
내가 가진 상처를 바탕으로 타인을 바라보며 새로운 억울함과 고통을 만드는 인생을 살아간다면 이 또한 당신의 고통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굳이 그 어려운 길을 갈 필요가 있을까? 상처의 본질을 떠올려 보면 주로 가까운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림자를 적용하는 대상 또한 가까운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건 마치 전연인에게 받은 상처를 새로운 연인에게 덧대는 것과 같다. 너무 어리석고 불합리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린 그 어떤 상황에서든지 나의 어두운 그림자를 남에게 덮어씌우지 말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고 너무 빨리 판단하지도 말자.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끌어 주는대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관계를 만들어라. 우리에게 필요한 관계란 서로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관계며 내적 모습을 고백하고 포용하는 관계다. 잠시 이 글을 읽고 생각해 보자. 나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함부로 투영하지 않았는지, 그 사람이 봐주길 바랐던 진정한 모습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그리고 나는 타인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지.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하는 관점 속에서 우리는 곪았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글쓰기를 보면서,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보았다. 나도 어떤 기사, 책 등을 주제로 잡고 내 생각을 풀어낼 목적으로 해당 소재를 사용한다. 저자는 철학자들의 아포리즘을 하나 제시하고, 해당 내용을 토대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내가 추구하는 방향과 일치하고, 저자는 책으로 만드는 능력까지 있으니 본받을 만한 점이다.
나는 과거에 내가 받은 상처를 남에게 투사하기 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줬을 행동에 죄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 내가 과거에 보였던 어두운 그림자를 보게 되면 이입이 된다. 그래서 나를 다시 바라본다. 또 다시 내가 과거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오늘도 내 주변에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을까하는, 자기 반성을 한다. 남에게는 너그러우되, 나에게는 엄격해야 한다고 되내인다. 그렇게 되내이지라도 않으면 나에게 관대해지고 만다. 그러면 또 과거의 망령이 내가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게 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마주했을 때, 나는 남에게 투영하기보다 다시 나에게 되돌려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의 친구는 나 자신이다. 그 친구와 친해져야 타자에게 투사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글로 쓰니까 쉽게 쓰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 힘들다. 차라리 혼자 고립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다. 살려면 친해져야 한다.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에게 손을 내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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