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생명 여행길에괴목 판자 하나 구했다책상으로나 사치 좀 해보려고붉은 벽돌 몇 장 괴 놓고표면 고르느라밤낮 없이 솔았다시간을 솔듯그렇게 밤낮 없이 괴목은 수지를 뿜어내며괴로워하는 것 같았다반듯하게 하는 것이 힘들구나너도 나도 힘들구나마음속으로늘어놓는데 인간의 변명아니고 뭣이랴 언제였던지단풍나무 가지 쳐 놓고다음 날 나가 보았더니수지가 피처럼 흘러 있어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언제였던지이른 봄해당화 줄기따라혈맥 같은 것 붉게 치솟는 것 보고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 언제였던지분에 심은채송화 꽃잎 벌어질 때전율같이몸 떠는 것 보고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생명은 무엇이며아아 생명은 무엇이며사는 것은 어떤 걸까 서로가 서로의 살을 깎고서로가 서로의 뼈를 깎고살아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