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그리스인 조르바에 도전했다. 사실 조르바는 어려운 책인지 아니면 쉬운책인지 객관적 평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어렵다. 조르바란 인물 하나에만 집중하고, 그를 바라보은 저자의 페르소나가 느끼는 그 정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나머지 구체적인 서사에 대해서는 항상 가물가물 하다.
사실 그리스인 조르바의 내용에서, 조르바의 자유로운 영혼을 클로즈업 하는 것은 저자의 시선이다. 조르바를 봤을 때, 누군가는 그냥 인생 막사는 개차반으로 치부할 수 있다. 허나 니코스 카찬차키스도 나름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제비돌기 했던인물이다. 지적인 소양 뿐 아니라, 인생에 비참한 내전에 휩싸인 경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그에게 자유로운 영혼의 조르바가 가진 내면의 세계는 매력적인, 말그대로 개안할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한 셈이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비명을 참 인상깊게, 마음에 새겨두고 살고 있다. 가끔은 까먹지만 검색해서 찾아보고 한다. 그리스어 원어는 모른다. 다만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마치 삼단 논법 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하는 이정표를 제시해준 느낌이다.
이제 40언저리에 아재가 되면서, 점점 먹고사니즘에 치어 살아가는 주변의 서사를 접하곤 한다. 나는 아직도 철이 없는 것인지, 최저임금에 천착해 살다보니 체념한 것인지 우선순위가 여전히 자유다. 이 자유라는 모호한 가치를 얻기 위해, 분투한다. 나름대로, 정말 요즘은 자유란 무엇인지 갈망도 하고, 타협적으로 얻어내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살면서 나름 내 꼴리는 대로 산 편이긴 하다. 내가 주도해서 선택한 경우가 많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어느정도 타협안을 가지고 선택했기 떄문이다. 어린시절 공부도 게임이나 취미라는 것들과 병행하기 위함이었고, 대학을 가는 공부도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연계해서 진학하려는 등 말이다. 어찌보면 주도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소극적인 자유의지를 발휘했었다.
대학에서 취업으로 가는 길에서 아마 크게 좌절하고, 도피처로 택한 "한국에서는 망했다" 플랜이었던 호주, 그리고 캐나다행 급행열차는 회피성 선택이었다. 그때도 도망친곳 치곤 나름 준 낙원이었다. 낙원이라기 보다는 숨통이 틔였던 곳, 여기서도 난 나름 선택을 잘 했다 느꼈다. 허나 그떄의 실패이후 5년여의 시간은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 없던 지옥의 시간, 그러했다.
정신을 차린지 한 1년, 길게봐도 2년이다. 다시 내가 자유를 꿈꿀 수 있는 멘탈이 돌아오니 미치겠다. 뭔가 스스로에게 자유를 찾아 나서보자고 데드라인을 정해놨지만, 항상 조바심이 난다. 이제 나이가 드니까 마치 게임 막바지에 마지막 자유도 설정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산투르를 치는데 방해가 된다며 엄지를 잘라버린 조르바, 수양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자신의 중요부위를 잘랐다는 수도자를 욕설하던 조르바와 당황한 저자의 페르소나가 떠오른다. 정말 자신의 목적이 자유라면, 엄지든 ㅈ지든 잘라버린다는 마음으로 달려드는 사람들의 정체성이 경외롭다. 나였다면, 아마 타협적으로 신체훼손을 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를 누렸을 텐데. 이런 절실하지 않은 마음으로는 자유를 얻기엔 미약한 것일까.
바라는 것이 없기에, 두려운 것이 없고, 두렵울게 없는 상태가 곧 자유라는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비명을 다시금 떠올린다.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바라는 것이 없어야 하는 게 맞다. 이거저거 잰다면 그것은 결국 무엇인가를 포기할 떄 느낄 두려움에 기인한다. 두렵다면 주저하게 되고, 그렇다면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자유로 가는 여정은 간단해 보이지만 포기한다는 것, 바라지 않는 다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해결해야 한다. 나는 적어도 타협점을 찾아서라도, 내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해내야 자유로 가는 1단계 티켓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준비해야할 자유에 대한 군자금이다. 쉽지않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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