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박경리, 3부 가을 <농촌 아낙네>

p5kk1492 2024. 10. 1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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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농촌 아낙네

 

뙤약볕 아래

밭을 매는 아낙네는

밭 안에 있는 것이 아니

온 밭을 끌어안고 토닥거

린다

 

밭둑길 논둑길이 닳도록

오가며

어미 새가 모이 물어 나

르듯 오 가며

그것이 배추이든 고추이

보리 콩 수수 벼 어느 것

이든 간에

모두 미숙한 생명들이니

아낙에게는 가슴 타게 하

는 자식들이다

 

하늘을 우러러 축수한다

자비를 주시오소서 하나

연약한 목숨에게 자비를

목마르지 않게 비 내려 주시고

숨 막히지 않게 바람 보

내 주시오소서

 

밭을 끌어안은 아낙네는 

젖줄 물려주는 대지의 여

신과 함께

번갈아 가며

생명을 양육하는 거룩한

어머니다

 

감상

씨뿌리고 수확하는 농촌 아낙네에게서 신성함이 느껴진다. 농경의 신 복희씨처럼, 대지의 여신 가이아와 같이 땅에 씨를 뿌려 생명을 낳고 거두는 것은 신성함 그 자체다. 농촌 아낙네가 고생스럽게 밭일하는 풍경을 두고 이런 숭고함을 그려낸점이 매력적이다. 3부가 일단 계속 맘에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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