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인생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등교하려고 집을 나서면가끔 만나게 되는 사람이있었다얼굴은 조막만 했고입을 굳게 다문 노파였는데가랑잎같이 가벼워 보였으며체구는 아주 작았다언덕 위 어딘가에 오두막이 있어그곳에서 혼자 기거한다는 것이었다지팡이를 짚으며 그는 지나간다하루도 거르지 않고 밥을빌어먹기 위해노파는 이 길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작량을 잘했으면 저 꼴이되었을까젊었을 적에는 쇠고기 씹어 뱉고술로 세수하더니만노파 뒤통수를 향해그런 말을 던지는 사람도있었다젊었을 적엔 노류장화였던 걸까명기쯤으로 행세했던 걸까노파는 누가 뭐라 해도굳게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지팡이로 길을 더듬으며내려가던 뒷모습몰보라는 이름의 노파 ㄴ 나이가 들고, 어떠한 사연도 입을 다문채 살아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