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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부모의 혼인
내 외가의 내력은
소설 "김약국의 딸" 도입
부에
대강 그려져 있지만
도입부 이외는
모두 외가와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딸 다섯과 아들 하나
물정 모르는 할머니를 남
겨 놓고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세
상 떠난 후
너무나도 궁핍하여
출가한 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을 했다
니까
사뭇 "김약국의 딸들"과
는
그 내용이 판이하다
한편 친가는 당시
경찰서 자리
그러니깐 경찰서가 들어
서기 이전
지금은 그 경찰서마저 없
어졌으니
실로 강산이 열 번 가까
이 변했을 것인데
여하튼 그 곳에서 술도가
를 했다니까
다소 부유했을 것이며
열네 살의 철부지 신랑과
열여덟의 건강하고 용모
가 반듯한 신부
그러니깐 이 혼인은 정략
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노동력을 얻는다는 정의
는 있었던 것 같다
불행했던 내 어머니를 위
하여
나는 그것을 해명하지 않
으면 안 되겠다
어머니에게 붙어 다니는
말에는
늘 조강지처였고 법으로
만났으며
육례를 갖추었고 기영머
리 마주 풀었다
이 말이 그 시절 혼인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이
었다.
감상
그 그시절, 우리 부모세대의 더 윗 세대들의 혼인 풍경을 에세이적 느낌으로 풀어낸다. 저자가 자신의 삶과 관련한 이야기를 적당히 잘 풀어낸 듯 하다. 일단 분량이 적절하다. 당대의 결혼이란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이었다. 지금 결혼하지 않는 이유도 어쩌면 더이상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객체의 삶을 거부하는 몸부림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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