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고 흔적

읽은 흔적,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p5kk1492 2024. 7. 1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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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이방인, 카프카의 변신 다음으로 자주 도전하는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다. 도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읽고나서도 완전히 읽었다 말하기 어렵다. 이방인과 변신은 주인공의 시점에서 서사도 간결하고, 카뮈나 카프카에 대한 배경지식을 곱씹으면 어느정도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된다. 그리고 여러번 읽으면서 나름 읽었다고 말할 만큼은 되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도 두 책도 읽었다고 말할 정도가 되려면 1-2주 내로 다시 읽은 상태에다가 나무위키로 쓱 복습까지 할 정도는 마치고 난뒤 읽었다고 표현할 만한 책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책이다. 일단 분량이 많지는 않아도 위의 두책보다는 좀 된다. 서사도 복잡하지는 않지만, 조르바가와 겪으면서, 조르바의 말과 주인공의 생각등이 뒤엉켜져 독자에게 지속적으로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내가 누누히 소설에 대한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말하는게,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사를 따라가다 중요 포인트를 다 놓쳐서다.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등도 책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등장인물이 많아지면 더 심하고 말이다.

 

서사도 못따라는 상태에서 왜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란 인물을 니체나 베르그송, 붓다같은 위인의 반열에 놓았을까 하면서 책을 봤다. 그래서 더 이 책이 어렵게 느껴졌고, 읽고나서 해석이나 후기를 찾아보고 읽은척이나 할까 말까 였다. 사실 아예 읽었다고 말한적은 처음에 딱 한번, 그때도 감상평도 안남겼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나 복붙해서 있어보이는 척만 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아마도 내 기억에 세번째 감상이기도 한데, 책갈피도 하고 서사는 복잡하지 않아서 대강 알기에, 주인공과 조르바의 교감을 중심으로 잘 읽었다. 조르바를 철학적 인물의 위치로 올려놓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와 조르바가 남긴 흔적을 최대한 책갈피로 남겨놓았다. 경박하게 표현하면, 자유분방하게 날뛰는 조르바의 고삐를 잡아서 철학적 메시지로 승화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본다.

 

실제 조르바란 인물의 자유로움 속에서 주인공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아마도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느꼈던 부분이 소설로 표현되었다고 본다. 산투르를 치기위해 방해되는 손가락을 잘랐다는 조르바를 보며 인상깊은 대화를 나누는 주인공은 독특한 감명을 받는다. 살인과 사기를 통해 오히려 자유를 얻는 결과에 대해 신랄하게 말하는 장면 속에서 조르바의 자유분방하지만, 역설적인 세상에 대해 분노와 조롱 비슷한 생각에 대해 조르바는 거침없이 주인공에게 전한다.

 

조르바의 말 속에서 주인공은 자유에 대해 고민한다. 자신이 생각했던 자유와 다른 조르바의 자유에 대해 말이다. 조르바는 조르바외에는 믿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남들도 나와 같은 짐승이라며 분에 찬 말에서도 주인공은 곱씹는다. 인간을 경멸하나 같이 함께하는 그의 삶, 주인공이었다면 고행자가 되거나 함께 어울리더라도 자신을 가짜깃털로 감췄을 것이라며 그이 가치관에 한번 놀란다. 그렇제 조르바를 보면서 주인공은 기존의 철학적 성찰에서 인간적인 접촉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직은 늦지 않았을 것이라 말하며

 

그리스인 조르바는 조르바와의 대사 면면의 내용, 그리고 오르탕스 부인과의 일화 등과 같이 서사에서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나는 조르바의 말과 주인공의 성찰을 따라잡느라 많이 허덕였다. 그래도 세번째 도전이라 군더더기는 빼고, 내가 편식한 내용만 감상으로 남겼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또 언젠가는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을 흔적과 함께 남기면서 읽은 흔적을 마무리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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