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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생명
여행길에
괴목 판자 하나 구했다
책상으로나 사치 좀 해
보려고
붉은 벽돌 몇 장 괴 놓고
표면 고르느라
밤낮 없이 솔았다
시간을 솔듯
그렇게 밤낮 없이
괴목은 수지를 뿜어내며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반듯하게 하는 것이 힘들
구나
너도 나도 힘들구나
마음속으로
늘어놓는데 인간의 변명
아니고 뭣이랴
언제였던지
단풍나무 가지 쳐 놓고
다음 날 나가 보았더니
수지가 피처럼 흘러 있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언제였던지
이른 봄
해당화 줄기따라
혈맥 같은 것 붉게 치솟
는 것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또 언제였던지
분에 심은
채송화 꽃잎 벌어질 때
전율같이
몸 떠는 것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생명은 무엇이며
아아 생명은 무엇이며
사는 것은 어떤 걸까
서로가 서로의 살을 깎고
서로가 서로의 뼈를 깎고
살아 있다는 그 처절함이
여
감상
나무와 꽃을 보면서 생명과 삶의 처절함을 느낀다는게 사실 와닿진 않는다. 이러한 어떤 나무의 수액이 흐르는 것을 두고 혈맥을 보듯, 나무나 꽃과 같은 대상을 두고 생명력을 느낀다는게 역시 시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확실히 시적인 사유도 모자라지만, 식물이나 동물에 대한 감상이 좀 떨어진다. 특히 나무나 꽃을 보고 뭔가 느껴지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시에 대한 감상보다 내 부족함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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