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냄비같은 인간이었다. 무엇인가 신나는 일이 생기면 들떠서 주변에 떠벌리기 좋아하고, 기분이 안좋으면 표정부터 행동까지 우울한 인간의 전형 말이다. 지금도 그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았지만, 우울함이 디폴트가 되었다는 점이 좀 다르긴 하다.
예전에는 우울함이 잠깐이고, 기쁘고 재밌는 순간이 내 현실의 진짜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역사책을 읽고 나서 떠벌거릴 때, 내성적인 친구들 앞에서 광대처럼 지껄이던 내 모습이 진짜라고 여겼다. 그게 대학에 가서 성인이 되었을 때는 술마시고 어울리는 내 모습,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내 얼굴과 표정 손짓들, 몸짓들 그딴게 내 진짜 모습이고 혼자 있을 때 공허한 내 존재는 그저 잠깐 지나가는 승강장같에 있는 것이라 여겼다.
37살이란게 어설프게 나이를 쳐먹은 상태인 것처럼, 어설프게나마 내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내가 느낀 공허함이나 외로움,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때 나혼자 있을때 느끼던 가벼운 우울감이 차라리 내 진짜 모습이란 것을. 더 밑바닥에 끝을 모르는 깊은 우울증, 자괴감 죄책감으로 스스로 마음의 지옥으로 가둬놓던 시절을 겪고 나니 알았다. 차라리 가벼운 우울감을 느끼는 상태가 낫다는 점을 말이다.
올해는 어쩌면 회복의 해라고 선언할 만큼 좋은 기분으로 살고 있다. 역설적으로 가짜의 해가 아닐지도, 중간에 찾아오는 가벼운 우울감이 반갑게 대할 필요도 있을 만큼 내 예전의 광대스러움을 만끽하고 있다. 내가 진짜라고 생각했던 내 과거의 모습이 가짜였다는 생각으로 체념했는데, 이번 해에 다시 내 예전 모습을 찾았을 때 마냥 즐거워야 할지 고민이다. 이미 난 우울함이 내 기본값임을 받아들인 상태, 올해와 같이 기분좋은 내 예전 모습을, 진짜라고 착각했던 내 모습을 반겨야 할지 잠깐 고민을 한다.
예전처럼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와 유쾌하게 지나가는 이 상황들, 가끔 어울려서 가벼운 술자리에서의 진솔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는 자연스러운 상황이 원래 내 일상이 아니었기에, 아마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때문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일지 모르겠다. 걱정도 팔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마음의 지옥에 갇혀있던 시간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아니면 아직도 그 지옥에 있을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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