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을 추구하는 개인과 사회에 대해, 충분함을 제안하는 철학서적이었다. 이 책 읽으면서,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란 책이 오버랩되었다. 둘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Meritocracy 능력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둘다 미국 엘리트 지식인답게 자신의 주장을 방대한 근거를 차곡차곡 제시하는게 읽으면서 살짝 후회했다. 정리하면서 읽을걸 그랬다.
능력주의가 자리잡은 것은 결국 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를 선발하는 방식에서 능력을 통한 보상체계에 기인한다. 결국 개인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통해 자본주의 피라미드의 하이어라키에 속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사람들은 위대함을 추구한다. 위대함을 추구하면 능력주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자리하고, 그들은 위대함으로 구성원에게 그 과실을 나눠준다는 주장을 한다.
그게 낙수효과인데, 이것은 허상이다. 능력주의 엘리트는 자신이 얻은 지위로 구성원드를 위해 행동하지 않는다. 위대함의 맛을 본 엘리트는 다신의 지위를 공고위 하기에 결국 능력주의로 보상이 적게 받거나 거의 없는 구성원은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간다. 이는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다뤄지는 능력주의의 폐단이다.
그렇게 개인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데, 많은 이들이 지친다. 능력주의 피라미드에 도착하는 사람은 극소수니, 위대함을 추구하다 절망하고 자책하는 대다수는 구원할 길이 없다. 저자는 이에 대한으로 충분함을 제안한다. 충분함이란 표현이 체념하고 현실에 안주하란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가 아님을 재차 주장한다. 충분함 이란 용어가 가진 나이브함을 인지하기에 재차 언급하는 부분이 인상적이긴 하다. 사실 충분하단 표현에 나도 약간 낚인부분이 있다. 난 안주라하고 해서 읽은건데 말이다.
위대함에 대항하기 위해 충분함을 제안하면서, 마이클센델의 덕윤리를 끌어온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틸로스개념, 각자의 역할이나 능력을 공동체에 쓰일 수 있는 덕윤리를 제안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덕을 가르친다면 각자의 틸로스를 펼칠수 있는 세계관에 대해 언급한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귀족주의적 윤리관을 갖춘 고대의 철학자란 점도 잊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중용과 틸로스는 생명력이 있기에 다뤄지고 있다.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냉혹하다. 서로가 결국 능력주의 관점에서 관계가 맺어질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저자는 충분함으로 관계맺기를 제안한다. 여기서 글쓴이는 주변 친구들에게 충분함을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반론을 받았던 부분을 솔직하게 적기도 한다. 그럼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솔직한 이야기를 주고받음을 상세하게 적는다. 충분함의 관계가 위대함을 추구하는 사회의 관계보다 좀더 솔직하면서 서로를 견제함이 아닌 건전한 비판과 발전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었다.
개인과 관계를 넘어 능력주의로 지배되는 사회에서 국가나 기업은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박애적인 행동도 결국은 철저한 이득을 위해 움직이며, 능력주의의 수혜를 받는 일부 집단이 결국 지속적인 지원과 자원을 독점해 나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실 이부분부터 많이 놓치긴 했다.
아브람과 마이클 둘다 일종의 추첨제에 대해 언급을 한다. 둘의 글이 유사한 부분을 지적함과 동시에 대안도 비슷하다. 단순 추첨제라기 보다는 일정 정도의 능력치를 보여주는 구성원은 해당 조건을 갖춘 대상 모두를 두고 뽑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될 경우 일정정도의 조건을 갖춘 구성원은 그 이상의 치열한 노력의 시간을 가족 구성원이나 사회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결국 더큰 단위의 공동체나 기업 혹은 국가를 위해 에너지를 쓸 충분함을 갖출 수 있다. 실현가능성은 적어보이는 이상적 대안이긴 하지만 말이다.
마지막의 지구적인 단위의 충분함은 넘겼다. 전지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아서 읽히지 않았다. 다만 지구 환경에 대해서도 각자 위대함을 추구하는 국가들로 인해 해결책이 안보이긴 한다는게 요지다. 결국 충분함의 가치를 담으려면, 국가단위의 협약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이거야말로 몽상적 견해라고 생각이 들어 넘겨짚었다. 솔직히 저자의 논리라면 당연 설득력 있는 내용이 있을텐데, 나한테는 와닿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엘리트 백인을 만나서 반가웠다. 마이클 센델과 같은 인물이 미국에서 종종 등장한다는게 신기하다. 대한민국에서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능력주의의 심장부에서는 이렇게 자기비판적 지식인이 등장하는게 부럽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능력주의 꼭대기까지 올라간 지식인이 능력주의를 비판할만한 이유를 못느낄 것이다. 내가 위대함에 정점에 있는데 그걸 비판하면 자기부정이라 생각할것 아닌가.
결국 능력주의를 비판할 때 설득력을 얻으려면 능력주의의 정점에 올랐거나 오를 수 있을 정도의 조건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엘리트의 부패는 차세대 엘리트를 통해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충분함을 통해 다수가 능력을 발취하고 행복을 느끼는 연대하는 공동체를 제안하지만, 그마저도 위대함을 추구하던 엘리트의 힘이 필요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기꺼이 바닥으로 몸을 던질 수 있는 선지자... 충분함을 주장하는 아브람도 사실 능력주의 피라미드의 상위계급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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