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반절 정도를 이주민 봉사로 보내고 있다. 한두시간 정도 하면 되겠지 했던 생각, 어느새 오전에 검정고시 교육보조와 오후에 한글교육 봉사 등으로 이주민들과 시간을 보내는 주일이다. 이주민을 돕던 교육봉사자가 현재 나 혼자로 줄어서 독특한 상황 속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 반, 조금은 책임감을 가진 하루로 봉사가 끝나고 나면 약간은 정신이 빠져 있다.
그렇게 어영부영 집에와서 정신차려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알차게 반절을 보내고 방구석에서는 배달음식어플을 켜고 저녁메뉴를 뒤적인다. 그렇게 고른 네팔음식, 호주에서 네팔부부와 살때 외식으로 사먹던 음식들로 나홀로 먹방을 찍었다. 카메라로 남길만한 비쥬얼은 못된게 배달음식이라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와 네팔음식점을 가게된다면 인스타 스토리에 올려볼까.
오전에는 한국문화에 꽤 적응했지만,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친구와 일대일로 수업을 한다. 말이 수업이지 중학교 검정교시 준비라서 37살 아저씨가 어린 친구에게 상식을 알려주는 느낌에 가깝다. 오전은 약간은 쉬어가는 느낌이라면, 오후가 정신없다. 대부분은 네팔과 같은 힌두 문화권, 인도인 친구들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정신없는 이유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일단 구성원이 자주 변경이 된다는 점이다. 이부분은 봉사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중간, 그리고 봉사가 끝날때마다 상황을 보고하면서 인지한다. 한글관련 교육봉사자가 오래 하기 힘든 이유, 열의가 떨어지는 점은 피교육자가 자주 교체되는 데에 있다. 나름 사범대 중퇴 출신이라서 교육현장에 대해 대충 이해했다. 원래 교육이란게 교사만 열의를 갖는 패착을 경우가 많다. 이주민은 생업이 우선이지 한글은 대충 손짓발짓 혹은 구글번역으로 뗴워도 된다.
둘째는 구성원 변동에 따라 진도도 천차만별이다. 같이 오는 가족들 간에도 진도가 다르고, 새로 참여하고 빠지면서 다시 처음부터 알려줘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그래서 강의식 수업을 할 수 없다. 한글을 영어로 가르쳐야 하는데, 인도친구들이라 영어가 대부분 가능하나 같이 온 구성원 중에는 영어가 안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때는 인도친구들 중 몇몇이 보조교사가 된다. 일종의 통역 겸 교육보조의 역할이랄까. 그래서 사실 재밌는 부분도 있다. 내가 어설픈 영어로 알려주면 힌디어로 알려주면서 그 친구는 교육의 효율성이 더올라간다. 재밌긴 한데, 정신이 없어지는 포인트긴 하다. 뭔가 강의식 수업을 하다가 과외느낌도 가져가다 보조교사까지 갖춘 요상한 시스템이다.
셋째는 오늘 겪은 일인데, 한글 자모음도 떼기도 전에 실제 생활에 필요한 문장을 알려달라는 요구가 증가했다. 기존에 같이오던 친구도 읽고 쓰는게 힘들어서 실생활 문장 몇가지를 알려달라 했는데, 오늘 새로온 친구는 교보재를 재처두고 문장을 알려달라 말했다. 피교육자의 요청이 우선이라서 일단은 알려주었다. 물론 한글을 알아야한다는 점, 숫자를 한글로 읽고 표현하는 법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피력했다. 하지만 일단 배곯는 아이 젖물리듯 유용한 문장, 원하는 표현을 최대한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폭풍같은 오후 한시간 반이 지나갔고 오늘도 약간 등골에 식은땀이 난 상태로 진을 뺀 채 있었다. 빈 교실에서 좀 주변정리 하면서 화장실도 가고 짐도 챙기고 나름의 마무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봉사가 끝나고, 집에서 졸고, 네팔음식을 먹으면서 추억보정 반 오늘 하루 뿌듯함 반으로 하루를 마무리중에 있다. 네팔친구들에 대한 고마움? 인도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섞인 하루였다. 네팔에 대한 인식은 좋은데, 인도에 대한 비판적 마인드는 여전하다. 그런데 인도친구들이 이주민으로 고생하고 있으면 또 내가 도와줘야지.
근데 내가 이정도까지 봉사를 열의있게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1시간정도 생각했던게 일요일의 메인 퀘스트가 된 상태다. 돈을 받고 하는 일이었다면 스트레스 였을지도,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가르치진 않지만 그래도 보수를 받고 하는 일보다는 마음이 덜 무겁긴 하다. 어깨에 힘을 빼고 뭔가 일과를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다. 돈받고 일하는 것만큼 보람없는 일도 없다. 내 성취가 최저임금으로 대체되는게 좀 그렇다. 예전에 요양보호사 일이 분명 사회에 도움은 되지만 돈을 받음으로 인해 봉사라고 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동료들로부터 쓰레기취급을 받았을 때, 결국 돈을 받고 하는 일이였기에 똥오줌을 치워도 욕을 먹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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