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신성시되고 결속이 이기주의를 이기는 세상을 노래하는 혁명가들의 공상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갈등이 없는 사회라는 혁명가들의 꿈과 걸을 수 있게 되는 장애인의 꿈은 대단히 비슷하다. 모두 불가능에 도달하고, 다시 시작하고, 새로운 실을 묶는 것이 가능하다고 약속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꿈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실제 꿈을 해석한 프로이트에서 부터 꿈과 환각의 관계 등을 통해 실제 우리가 수면을 통해 이루어지는 꿈이라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뒤에 진짜 우리가 지향하고 꿈꾸는 미래비전을 결부시킨다. 이 둘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룰 수 없을 정도의 꿈,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을 법한 그 꿈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는 점이다.
물론 수면 중에 발생하는 꿈은 무의식의 발현, 혹은 왜곡, 현실세계의 경험의 총체등이라 말한다. 학자들 견해중에는 꿈을 통해 일상속의 겪었던 사건들을 정리작업하는 과정이라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꿈만큼은 폐쇄적인 무슬림에게도 자유롭게 상상하고 현실 속 욕망을 풀어내는 순간이기도 하다. 위의 혁명가의 꿈처럼, 우리 개개인에게는 꿈을 통해 삶을 버텨내는 힘을 간직 사람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네 번째 의미인 희망과 함께 꿈을 연결지어 마무리를 하고 있다. 결국 두 가치가 삶의 의미에 있어 다소 비현실적인 가치일 수 있다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꿈없이 살아간지 오래인 사람들도 있다. 꿈은 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는 꿈을 꾸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20대 초반까지 꿈이란 개념어를 일상속에서 사용했던 기억이 전부고, 최근에 다시 조금 블로그나 일기에 끄적이는 정도다.
꿈을 잃어버리면, 염세적이거나 지극히 현실주의적으로 변한다. 어쩌면 보신주의, 그냥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차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꿈이 있으면 현실의 고통도 견뎌낼 수 있다. 꿈이 없으면 현실의 고통을 그저 받아들이고 만다. 고통에 대한 내성은 점점 강해지지만, 내 자신을 상실해가는 점에서 꿈이 없는 삶이 조금은 암담하다. 나는 그러한 삶을 예상했고, 이제야 다시 꿈을 내 삶의 의미에 두고 살고 싶단 생각이 들고 있다.
내 삶에 있어 꿈은 타협은 하되 내가 하고자 하는 바는 꼭 하고 살자는 마음이다. 내가 재능이나 노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서 만큼은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 그것이 운동의 한 종목을 배우는 것일 수도, 해외로 나가 봉사를 하는 삶을 살아보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는 거창한 꿈도 좋지만, 타협적인 방향에서 실현성 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것을 회복한 것 마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꿈을 꾸려는 시도마저 잃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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