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야기는 참, 멀티버스의 나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단편이다. 내용은 간통을 저지른 아내에게 복수를 꿈꾸는 남편 시가예프가 총포상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부와 아내를 죽이고 자살까지 계획하며 총을 고르는 시가예프, 하지만 총기를 골라주는 점원의 이야기에 점점 계획이 산으로 간다. 총이 일단 비싸고, 어떤 총은 간통한 아내를 죽이기엔 쪽팔린 총에 대해 소개도 하는 점원에게 시가예프가 휘둘린다. 그의 복수는 결국 잠정적으로 정리하고 만다. 그렇게 능욕당한 남편은 8루블짜리 싸구려 그늘을 사며 능욕당하며 마무리된다.
어린시절 괜히 누군가 시비걸린 상황이나, 평소에 좀 괴롭힌 당하던 상대와 싸움을 하는 상황을 머릿 속으로 그리곤 한다. 찐따의 머릿속 싸움은 마치 메이웨더다. 현실은 찍소리도 못하는, 그야말로 능욕당하는 인간이다. 그렇게 상상으로 밖에는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 찐따는 스스로를 능욕한다.
소설의 주인공 시가예프가 능욕당한 인간이다. 간통한 아내와 정부에게 능욕당하고, 살인과 자살을 계획하다가 점원에게도 능욕당한다. 그렇게 뭐라도 사고 가야싶어 8루블 싸구려 그물로 스스로를 능욕하면서 이야기가 종결된다. 능욕이란 표현이 그야말로 잘 어울린다. 복수를 꿈꾸며 총을 구매하는 예비 범죄자였던 시가예프, 그는 8루불 짜리 능욕의 그물을 들고 상점을 떠난다. 자살까지 생각한 복수귀가, 괜히 간통때문에 유형지로 가게 되면 아내만 좋을꼴 보기 싫어 포기하는 쫄보가 된다.
하지만 시가예프가 정상적인 인간이다. 복수를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인간이 제정신이 아니란 점이 현실이다. 단편소설에서의 시가예프는 지극히 능욕당하는 인물이지만, 현실세계에선 정신멀쩡한 인간이다. 나도 시가예프같은 선택을 하게 될거란 생각이 든다. 복수를 하기엔 분노조절잘해형 인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범죄를 저지르다 실패하면, 간통을 저지른 두 년놈들이란 생각으로 귀결되는 데에는 시가예프의 결정이 동의한다.
결국 나도 언젠가 시가예프처럼 능욕당할 인간이고, 누군가를 능욕할 인간이 될 수 없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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