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해 건강한 태도로 알아가는 여정은 삶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항상 죽음을 다루는 책을 고른다. 에세이같이 개인이 죽음에 대해 생각한 글을 찾는게 보통이고, 가끔은 위와 같은 인문학 서적을 읽기도 한다. 후자를 읽을 때는 조금 어렵지만, 책을 어떻게든 소화하려고 노력한다. 이번 책은 죽음을 철학적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이 담겨 있었고, 역시나 반가운 실존주의의 흔적도 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제대로 고찰하긴 어렵다. 내가 서평대신 읽은 책이라 말하는 이유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게되는 모호한 감상 때문이다. 결국 여기서 얻을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죽음의 은폐성이다. 우리는 필멸의 존재이기에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동물이다.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죽음을 인지하지만, 본능이다. 우리는 죽고 나면 무덤을 만들고, 의식을 치루는 행위를 호모 사피엔스 이전의 유인원때부터 행해왔다. 죽음을 알면서도 마치 영원히 살것처럼, 죽음을 삶에서 은폐 함으로써 우리는 삶을 이어나간다. 그것이 죽음의 은폐성이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철학, 그에 영향을 받은 소설 등과 같이 계보처럼 이어져왔다. 죽음을 다루기 위해 영혼의 존재를 만들기도 했고, 사후세계 혹은 이데아와 같은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만들기도 한다. 결국 삶을 위해 죽음과의 동거를, 아니 일종의 타협을 한 셈이다. 삶과 죽음을 이분법적으로 혹은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두고 철학적으로 고찰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죽음을 사유해왔다. 철학자, 신학자와 같이 당대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신의 세계 이후에 등장한 이성과 과학의 세계 모두 죽음을 이해하는 초석이 되었다. 절대자의 세계관에서 이성과 과학을 지배자로 둔 세계의 야만이 실존주의라는 사생아를 낳았고, 실존철학이 한때 유행처럼 풍미하고 쇠락했지만 철학적 유산을 남겼다. 실존주의는 어딜가나 이젠 철학사조중 하나였다라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구사하는 듯 하다. 여기서도 하나의 갈래처럼 현대철학의 죽음을 다루는 목차 중 하나지만, 전체적인 영향력은 유효하다. 죽음을 우리 삶에 이유로 두는 점 말이다. 죽음을 마주하고, 은폐했던 죽음을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물음으로 다가가게 한 것이 현대 철학의 기조다. 그것을 실존철학에서 여러 철학자들이 고찰했던 부분이다.
결론부에 이르면, 아마 내가 종교를 갖기 전이었다면 실망스러운 마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죽음을 고찰하고 극복하는 방식은 철학적 고찰 너머 사랑으로, 희생을 각오한 사랑이 죽음을 말하면서 끝내고 있다. 우리가 죽음의 은폐성을 통해 삶에서 죽음을 망각했다. 이유는 불안, 막연한 공포는 우리의 삶 전체를 고독하고 위태롭게 만든다. 그 뒤에는 죽음과 삶을 같이 보거나, 죽음을 마주하고 달려가는 존재로서 실존적 사유에 이르기도 하였다. 종교적 입장에서 죽음은 예수의 사랑이 그의 십자가형을 통해 고찰한다. 죽음은 결국 극복의 대상이고, 두려운 것이 아니다. 결국 사랑을 통해 죽음이 주는 불안이나 공포를 승화한 예수의 선택이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향한 대화를 끝맺음 한다.
아마 많은 철학사조가 그리스도교의 예수가 보여준 죽음에 대한 헌신과 사랑에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동양의 죽음과 서양의 죽음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 거기에 있다. 기독교의 죽음이해에 대해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수용을 통해 자신들만의 죽음에 대한 고찰을 해왔던 철학자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죽음에 대한 고찰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해준다. 삶에 있어 죽음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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