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끄적이기

오늘의 나는 과거의 자유, 방종의 대가를 치룬다.

p5kk1492 2024. 8. 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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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등가교환의 법칙일까. 어린 시절에 재밌게 봤던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나온 등가교환의 법칙이 문득 떠오르는 날이었다. 동료와의 회식자리에서의 즐거움과 오늘 모임에서 느낀 알수없는 씁쓸함을 통해 만감이 교차한다.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의미있는 이야기가 오고가는 와중에 혼자서 열폭한 하루였다.

 

예전에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은 기억이 있다. 짧은 내용이지만, 진보의 자유와 보수의 자유가 양분되기 전에 원초적으로 근대적 자유에 대해 논한 명저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밀의 자유는 나도 남에게 자유의 영역을 침해 받지 않으면서, 타인이 나의 자유의 영역을 침해하면 안되는 것을 말하고 있던게 얼핏 기억이 난다. 여기서 타인은 개인 혹은 국가의 영역까지도 볼 수 있다. 공동체의 개념까지 확되해서 봐야하는 것이 밀의 자유론이다.

 

짦은 모임시간 중 대화 주제로 행복에 대한 이야기와 포기할 수 없는 욕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 나왔다. 나는 행복이란 과거보다 덜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운 현재가 행복에 근접하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정리되서 말하진 못했지만 대충 저런 뉘앙스였다. 행복하다라는 감정보다 나는 불행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좀 크다. 그래서 아마도 덜 불행하거나 덜 고통스럽다면, 몇년전보다 혹은 몇일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만이라도, 그러면 행복에 가깝다고 본다.

 

포기할 수 없는 욕구에 대해, 전제조건은 생리적 욕구 이상의 것을 두고 생각해보는 이야기였다.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에 입각해서 생각한 질문인듯 했다. 사람이 당연히 먹고사니즘이 해결되는 것이 큰 문제니 이걸 차치하고 그 이상의 욕구에 대해 생각해보자라는 뉘앙스였다. 나는 자유였다. 자유라고는 말하지 못했고, 뭔가 내가 생각하는 영역? 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라는 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래서 반문으로 관계나 인정을 예시로 들어줘서 그에 맞춰 답했다.

 

관계를 예로 들자면, 나는 일단 상대방에게 최대한 맞추는 타입이다. 맞추다가 상대가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선까지 간섭하거나 요구하면 난 거기서 관계를 끊는다. 좀 잘못된 방식인것은 알지만, 나는 남들보다 좀 많이 참는 편이라서 이런 행동을 좀 정당화 하는 경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이렇게 해버리면 상대방은 영문도 모른 채 나와의 관계가 끊긴 셈이다. 사실 나는 상대가 알던 말던 이미 내 관계에서는 끝난 사람이란 마음이라 별 생각이 없긴하다. 잘못된 것은 알지만, 참 돌아이스럽게 고칠생각도 없다. 물론 이 말은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선에서 질문의 답을 마쳤다.

 

인정에 관한 내용은 답하지 않았고, 그냥 넘어갔지만 예시를 들어본다면 이러하다. 내가 워홀에서 필리핀 매니저 밑에서 노가다를 한 적이 있다. 돼지농장이었는데, 나는 그냥 잘 견뎠다. 그런데 후임으로 같은 한국인 친구가 왔는데, 필리핀 매니저가 너무 괄시하면서 갈궈됐다. 내 문제가 아닌데, 나는 그 부당한 행동에 뚜껑이 열려버렸다. 내가 개겼고, 나는 숙소로 가버렸다. 그리고는 이제 슈퍼바이저 급 오지 매니저에게 필리핀 친구의 부당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또 이럴때는 달변가가 된다. 심지어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말이다. 뭐 이런식이다. 내가 겪던 아니면 남이 겪던 내가 참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때, 나는 상대에 대해 선을 넘었다 생각하고 저항한다. 아마 사회생활에서 그런식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나보다.

 

그러고서는 이제 자유에 대해서 더 이야기가 진척이 되었었고, 내가 생각하는 자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살아온 궤적을 보면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서 공부, 그러다가 호주로 도망도 치고 그랬다. 결국 캐나다에서 최종적으로 정착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내가 하고싶은 대로 살았다. 나도 그렇고 남이 봐도 자유롭게 움직이긴 헀다. 그래서 지금은 제주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나름의 자유를 모색하고 있음을 말했다. 내가 시간과 공간에 제약에서도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이를테면 지금의 독서와 글쓰기, 그리고 라디오 녹음과 취미등 말이다. 모임에서는 독서만 말했지만, 위의 활동은 내가 감옥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자유를 느끼게 만드는 것들이다.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씁쓸한 이유를 느낀 것은 열등감 떄문이다. 비슷한 모임을 철새처럼 돌아다녀봤지만, 독서모임 특성상 모임원들의 직업이 평균적으로 좋았다. 나는 당시에 요양보호사였고, 지금도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최저임금 직업인지라 좀 부끄럽긴 하다. 어차피 각오하고 모임에 참여하긴 했지만, 오늘은 좀 유난히 열등한 감정이 드는게 참 스스로 졸렬하다 생각이 들었다. 직업을 물어보기 전에 마음이 불편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내 직업이나 벌이가 불만이 있다기 보다, 독서란 취미를 가지기에 내가 좀 부족한가 싶었다. 참 찌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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