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학생인 시절에 선생님에게 질문이 떠오르지 않는 다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의 답변은 아직 자아가 없기 떄문이라고 간단하게 넘어갔다. 시답지 않은 질문이야 금받 내뱉지만, 근본적으로 왜 그럴까? 라는 고민이 담긴 질문을 누군가에게 던진 기억이 별로 없다.
저자의 말마따나 원래 그렇다는 말로 모든 질문을 차단해 버리는게 현실이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시도떄도 없이 부모에게 왜?라고 질문한다. 그때는 다 관심도 가고 부모의 관심을 원하는 표현이지만, 아마 정규교육을 위한 선수학습만 들어가도 질문은 줄어든다. 질문을 여유도 없이 세상이 주는 답변을 암기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왜 이렇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고민보다 이미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을 체념하는 태도를 학습하고 있다. 역사가나 기자나 모두 호기심을 발판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고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그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삶을 꿈꿨던 사람 치고는 인생에 질문없이 살아가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
아마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작은 소원, 이렇게 하루하루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는 것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그동안 많이 체념하고 살았다. 이제 나는 그냥 질문보다는 하루가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럽길 바라며 삶에 대한 질문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상실했었다.
지금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싹트고 있지만, 아직 풀어내기엔 시기상조다. 다만 가시 꿈틀거리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이렇게 살기엔 무엇인가 아쉽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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