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길었던 해외생활

네팔부부와의 우연한, 그리고 소중한 만남의 시작

p5kk1492 2022. 1. 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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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떠나면서 휴학 신청을 했다. 6학기, 3년이 지나면 제적이 된다는 조항을 읽고 내린 결정이었다. 떠나면서 나는 이제 진흙탕으로 간다고 어렴 풋이 느꼈다. 인터넷으로 검색만 해도 다 나오는 세상이다. 구글에 '호주 워홀의 현실', '호주이민의 실상' 등을 보면서 대충은 알았다. 그리고 친구가 먼저 퍼스에 가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던 경험담도 한몫했다. 그래서 딱히 기대에 부풀어 가진 않았다. 

 

그저 사람들 눈을 피해 이방인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나는 이제 어디서 살더라도, 이방인으로 살게 되겠구나. 제주에 가도, 서울에 가도, 퍼스, 밴쿠버.. 어디서든 말이다. 결혼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여기까지만 하고 일단 이야기를 진행한다. 초기 퍼스 정착은 친구의 도움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한인의 힘을 빌렸다. 그 뒤로는 반년정도 네팔 부부와 우연하게 살게 되었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기억이 나는 대로 글을 쓰기에, 네팔 부부와의 첫 만남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한 번에 쓰기에는 너무 길거 같다. 그렇다고 시리즈로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일단 쓰고자 한다. 기억의 편린이라고 하던가. 일단 네팔 부부와의 우연한 충돌(?)을 설명하고자 한다.

 

호주에서의 동양인, Asain은 보통 동남부 지역의 아시아권 사람들이 많다. 필리핀, 네팔, 태국, 부탄, 싱가포르 등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다. 보통은 네팔이나 필리핀에서 온 이민 준비자 혹은 이민자들과 지냈다. 뭐 인도나 유럽 워홀러들을 만난 이야기는 나중에 풀어본다. 그것도 나름 재미가 있다. 오늘은 네팔 부부 이야기니까, 다시 네팔 이야기로 넘어간다.

지도를 보며 추억하는 삶

참고로 일단 글을 먼저 쓰고, 지도로 살던 곳을 찾았다. 그래서 약간 글의 앞뒤가 안 맞을 수 있다. 기록이 없다 보니, 지도로 내가 살던 곳을 검색한다. 보면서 기억이 나는 즐거움, 여하튼 내가 조심스럽게 걸어서 찾아간 곳, Lincoln st에 있는 약간 허름한 아파트다. 퍼스에 살아본 분이라면, 조금만 외곽으로 가도 전부 하우스만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퍼스 중심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선택했다. 지도를 보니, 네팔 부부랑 갔던 Nando's 도 보였다.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겠다.

 

처음 셰어를 방문했을 때, 인도 사람의 얼굴을 한 사람이 있었다. 아, 망했다. 당시에 인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일단 대충 듣는 척하다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일단 첫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첫인상 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도, 일단은 어디서 왔는지, 조심스레 물어봤다. Nepal, 니폴? 니펄? 나폴리? 흠... 집에 가서 검색했는데, 네팔 사람이었다. 

 

Prajwal Baral, 네팔 친구의 이름이다. 나이는 기억이 안 나지만 나보다 형님(?)이었다. 여러모로 합리적인 친구였다. 나이는 다르지만 친구처럼 지냈기에, 친구라는 표현을 쓴다. 항상 합리적으로 설명해주고, 대화할 때 여러 가지로 느낀 점이 많았다. 물론 약간은 꼰대(?)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뭐 그 정도는 누구나 있으니까. 나도 그렇고. 지금도 그 친구가 보내준 이메일이 남아있다. 그냥 셰어 비용을 얼마나 부담하자는 내용의 문서? 다. 낭만적인 메시지, 그런 건 없다. 그런데, 지울 수 없었고, 안 지워서 다행이다.

 

Rasmi. Rrajwal의 아내이자 또 다른 나의 친구다. 정말 똑똑한 친구였다. 다정하고, 상냥했다.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는 게, 라스미, 라슈미, 라스미따 이렇게 부르곤 했다. 인도에서 간호를 공부하고, 영어성적만으로 바로 호주 간호사 자격을 얻은 능력자다. 영어성적이 되면, 1년 과정만 거쳐도 해외 간호 학위가 인정된다.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은 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말이다.

 

그렇게 둘은 한방에서, 나는 옆방에서 셰어를 했다. 동거(?)라고 말하면 뭔가 이상하니까, 굳이 셰어라고 표현한다. 아시다시피 해외는 거주비용이 워낙 비싸다 보니, 공동생활을 한다. 뭐 거실에서 살거나, 저 멀리 동부에서는 베란다, 화장실에서도 생활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동부,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실이다.

 

이렇게 매번 결산서(?)를 보내던 친구! 비싸보이나?

 

워홀러들의 눈에서 보면, 네팔 부부와의 셰어 비용은 비싸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홈스테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럼 엄청나게 가성비가 좋은 프로그램이다. 나는 공짜로 영어를 배운 셈이다. 물론 생존 영어지만, 호주에서 살아가는 데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물론, 이민을 준비할 때는, 시험을 쳐야 하니까 더 준비해야 하지만, 밑바닥을 각오하고 살아간다면 영어의 수준은 뭐 크게 상관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호주로 온 것은 희망보다는, 절망을 피하기 위한 삶이었다.

 

이렇게 또 네팔 부부의 소개? 정도의 이야기가 되었다. 계속 반복될 수 도 있지만, 앞으로 네팔 부부의 이야기 이를테면 뭐 그들과의 대화(어휘, 말투), 에피소드(벌레, 힌두, 숭배?), 문화 차이(식문화, 가치관) 등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한다. 소중한 추억인데, 기록이 없어 아쉽다. 기억날 때마다 적어놓는다.

 

사전 예고제? 난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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